“승소의 비결 사람의 마음입니다”

700만 달러 배상 이끌어낸 이제영 변호사

‘스타 변호사’란 수식어가 낯설지 않은 이제영 변호사. 그 동안 한인사회에서 크고 작은 교통사고 상해 전문 변호사로 유명세를 타던 그가 지난 해 한인 불법 체류자의 버스 교통사고 소송을 700만달러 승소로 이끌어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불체자라는 신분에 대형 버스회사인 ‘퍼스트 트랜짓’과 보험회사인 AIG를 상대로 한, 말 그대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 다름아닌 이 3년간의 지루한 법정 공방 끝, 배심원단의 만장일치로 700만 달러 배상이라는 기적을 일궈 낸 것이다. 그러나 모두들 알고 있듯 노력없는 기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인생의 기회란 준비된 자에게만 허락한다’는 새삼스런 격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 3년간 이 변호사가 이 소송을 위해 쏟아부은 정성과 열정을 듣고 있노라면 입을 다물 수 없게 된다. ‘거액의 수임료가 걸린 일인데 당연한 것 아니냐’며 치부하기엔 이번 승소 뒤에 그가 들인 공은 너무나 따뜻하고 절실했다. 머리보다는 가슴이 더 따뜻한 이 남자, 이제영 변호사를 최근 이전한 윌셔가 새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그의 이야기는 너무 조심스러워 일견 단조로운 듯 했지만 귀 기울여 듣고 있노라면 듣는 이도 가슴 뭉클하게 만들 만큼 뜨거워 인터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행됐다.

사건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읽다

사건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2월 LA 다운타운에서 배인식(48)씨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버스에 치는 교통 사고를 당하게 된다. 당시 그는 뇌출혈과 팔, 다리에 타박상을 입었고 이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지만 버스회사와 보험사는 오히려 배씨가 신호를 지키지 않고 갑자기 횡단보도에 뛰어들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보험사와 버스회사는 배씨의 불체자라는 신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배씨는 신경쇠약에 걸릴만큼 육체적?심적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처음 배씨는 이 사건을 미국인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했지만 영어가 서툰 배씨에게 변호사 접견도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중엔 연락조차 잘 되질 않았다. 그런 그가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찾은 이가 바로 이제영 변호사였다.

“합의를 떠나 법정까지 소송이 진행되면 그땐 법이 아닌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심원단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점은 무엇인지, 어떤 사실을 가지고 재판에 임해야 하는 지 등의 철저한 전략이 필요하게  되죠.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을 가장 확실하게 파악 할 수 있는 것이 모의 재판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사건을 위해 지난 3년간 자그마치 9번의 모의재판을 준비했다고 한다. 1회당 5,000달러에 달하는 적잖은 비용에다 매번 모의 재판을 준비해야하는 번거로움까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주류사회 유명 로펌까지 통털어도 이처럼 모의 재판을 준비하는 변호사들은 1%도 되지 않을 정도여서 그의 철저한 준비성과 치밀함에 동료 변호사들도 그에게 ‘미쳤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러나 여기서 감탄을 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번 소송 준비 과정을 듣는 중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의뢰인과의 철저한 인간적 교감 부분이다. 그는 배인식씨의 상황을 100% 파악하기 위해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한국은 물론 그가 미국에 오기 전 일했던 과테말라까지 방문해 가족과 직장 동료들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그리고 변호사와 의뢰인의 형식적인 관계를 깨고 마음까지 교감하기 위해 배씨와 지난 3년간 단순한 상담이 아닌 식사만도 100회에 이를만큼 이번 사건에 공을 들였다고.

“배심원단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선 사건 개요뿐 아니라 의뢰인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다 알고 있어야 하죠. 그러면서 배인식씨가 자신도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불쌍한 이웃을 남 모르게 도와줬다는 것과 형제들에게도 끔찍할 정도로 베풀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들을 집중적으로 법정에서 설명했고 결국은 그런 배씨의 진심이 배심원단에게도 전달돼 승소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정밀한 전략으로 승부한다

그렇다고 그가 무조건 배심원단의 감정에만 호소하는 것만은 아니다. 시퍼렇게 날선 법정에서 마음에만 호소한다고 승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보험사 측이 내세운 전문의들의 소견을 반박하기 위해 이들의 10년 전 법정 증언까지 찾아 당시와 지금 진술의 모순점을 제시해 배심원단의 신뢰를 얻는 등 치밀한 자료수집과 전략을 펼쳤다. 당시 의료진들의 진술의 모순이 속속 드러나면서  배심원단은 그들에게 야유를 보냈고 그 뒤부터 이 변호사의 변론에 전폭적인 믿음을 보냈다고 한다.

그의 치밀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재판 때마다 이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들을 방청객으로 참석케 해, 재판 후 이 변호사의 전략과 변론에 대해 모니터링하게 해서 보고를 듣고, 다음 재판을 준비할 만큼 그는 치밀하고 정확했다. 이처럼 꼼꼼하고 치열한 그의 변론 스타일 덕분에 재판이 있을 때마다 그는 밤잠을 설치기가 일쑤다.

“자다가 꿈에서도 재판에 대한 전략이 떠오를 때가 많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기억 못하니까 얼른 일어나서 메모하죠(웃음).”

더 이상 질문과 설명이 필요없는 이 변호사의 지독한 일 중독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렇다고 그의 법정 변론이 무섭고 치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배심원단을 박장대소케 할만큼 그의 변론은 유머감각이 넘친다. 사실 전쟁터나 다름없는 법정에서 유머를 구사하기란 아무리 경험 풍부한 유명 변호사라 해도 쉽지 않은 일. 그러나 그는 자신의 건망증을 변론 중 유머로 사용할 만큼 배짱이 두둑하다. 덕분에 배심원단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반해 재판 내내 작은 유머에도 함께 웃어주고 울어준다고.

그런 그의 승부욕 때문일까. 1993년 변호사 개업을 한 뒤 지금까지 1,000만달러, 1,200만 달러 합의라는 천문학적 숫자의 배상을 이끌어내는 등 이 분야에선 독보적인 스타 변호사로 굳건히 자리매김 하고 있다.

“얼마 전 배인식씨 가족이 한국에서 얼마나 그가 잘 살고 있는지를 비디오 테이프로 담아 제가 우편으로 보내왔습니다. 보는 내내 저 역시 참 흐뭇하고 행복했습니다. 3년간의 긴 소송의 피로가 한꺼번에 녹아내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눈가에 잠깐 눈물이 고였다. 승소율 숫자만으로 평가되는 냉정한 ‘이 바닥’에 이처럼 눈물 많은 변호사 한 명쯤 있어서 세상은 살만한 것이 아닐까. 그의 눈물이 창가로 쏟아지는 봄 햇살 만큼이나 따사로와 보였다.

글 이주현 객원기자 · 사진 이은호 기자

1 지난 해 한인 불체자의 교통사고 소송을 700만달러 승소로 이끌면서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제영 변호사가 최근 이전한 새 사무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2 주류사회 로펌에서도 보기 힘든 모의재판이 열리는 커퍼런스 룸에서 동료 변호사, 직원들과 한자리에 모여 포즈를 취했다.